posted by 우꺄꺄 2010. 5. 15. 12:34


직접 원두를 갈아 드립으로 깔끔하게 내린 부드럽고 향기로운 커피 한잔..

커피를 내릴때의 그 풍부하고 고소한 향기를 참 좋아합니다..


겸사겸사 창가에 놔둔 식탁에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만끽하며
이 커피한잔을 할때 아무런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슬플까요..^^;


제가 20여일을 후각 완전상실로 살았답니다..
겨우 요 몇일..후각이 조금 회복이 되었네요..휴우..-_-;


어느날 집안 정리를 하며 시작이 된 일인데요..
겨우내 쌓인 먼지며 옷장정리며 집안 정리를 한다고
혼자 뒤집었는데..재채기가 무지 나더라구요..

그다음엔 콧물..


어라..감기에 걸렸나..?
하고 생각했어요..

제가 감기에 잘 걸리는 체질이 아니라서..
이 기회에 좀 아픈척? 좀 해볼까나..싶은 치사한 생각을 하며
콧물을 마구 훌적여주며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신랑이 신문기사를 주욱 보더니
갑자기 '요즘 알레르기 비염이 유행이래' 그러는 겁니다..

알레르기 비염은 감기와 조금 뉘앙스가 다르잖아요..우씨..-_-;

그래서..'아니야..!' 그랬는데..
'금동이(신랑이 저를 부르는 호칭)는 감기에 잘 안걸리잖아!'
그러잖아요..억울하게..

아픈척 해야하는데..-_-;


+++


근데..
정말로 감기가 아니었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긴 있었답니다..

제가 원래 좀 아토피성 인간인데..
아토피는 '알레르기 비염'과 '천식'이 셋트로 묶여있어요.

지금까지 비염증상은 아주 살짝 생겨있었지만..
알레르기 비염이라던가 천식이라던가는 생각도 안하고 살았거든요..

근데..날로 심해지는 재채기와 콧물에 밤에 잠도 이루기 힘들정도로
콧속점막이 민감해지고 건조해져서 숨도 쉬기 힘들고 조그마한 
먼지 한톨만 들어가도 심하게 재채기와 콧물이 흐르더라구요..

일본인들은 삼나무 꽃가루알레르기 '화분증'때문에 이른 초봄에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데 이제는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 때
혼자 마스크를 쓰고 다녔답니다

그제서야 '아 알레르기 비염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청소하면서 한꺼번에 너무 많은 먼지를 들이마시는 바람에
급성 먼지 알레르기가 생긴거였어요..

근데 목소리가 꼭 감기 심하게 걸린 사람처럼 변하는 바람에
회사에서는 다들 제가 감기에 걸린줄 알았답니다..ㅎㅎ;


그렇게 콧속과 목까지 너무 아파서 괴로워하던 어느날..
 좀 이상한걸 발견했는데..뭔가를 만지다가 냄새를 맡아봤는데..
별로 냄새가 안나는 겁니다..냄새가 나야 정상인데..

그래서..집에 있던 향수를 뿜고 코를 들이댔는데..
우씨..그 강한 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겁니다..;;;


뭔 정보가 없나해서 뭘로 검색할까 고민하다가 '후각장애'로 검색을 해보니..
후각을 상실했으니 장애자등급을 받을수 있냐는 질문은 
지식인에 왜이리 많은 겁니까..버럭 -"-;


 +++


냄새를 맡을수 없으니 세상이 좋아?보이더라구요..ㅎㅎ

이상하지요..?


그래서..제가 신랑에게..'냄새를 맡을수 없는게 좋은점도 있는거 같애'라고 말하니..

'세상엔 좋은 향기를 맡을수 있는 기회보다는
나쁜 냄새를 맡아 느낄때가 더 많아서 그래' 라고 하더군요..

그러고보니..!!

우리는 '아 어디서 이런 좋은 향기가 나는 거지?' 라는 말보다는..
'에! 이게 뭔 냄새야?'라는 말을 더 많이 하는거 같아요..^^;

즉..악취를 구별해야 할때가 더 많다는 사실을 자각 못했네요..


그래서 그 상황을..긍정적으로 본다고..
'이제 나쁜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니 좋다!!'
라고 철딱서니 없는 대사를 읊조리고 하하하..웃었는데..-_-;;

'그럼 좋은 향기도 못맡는거 아녀..ㅠ..ㅠ'
하는 반작용이..우씨..

커피를 내리고..요리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예쁜 꽃을 보고..그럴때..참 아쉬운 겁니다..;;

어디서 불이 나도..타는 냄새를 못맡아서 혼자 도망도 못가서 타죽고..
깜박해서 가스렌지에서 뭐가 타고 있어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숯덩이를 만들고..
누가 독가스를 살포했는데 멍청히 있다가 쓰러져 죽고..

뭐..그런 생각을 하니..안되겠더라구요..;;;

그런데도 냄새는 그렇다치고 조금만 먼지나도 재채기에 콧물이 쏟아지는데
신랑이 아무리 구박을 해도 병원은 왜 그리 가기 싫은지..-_-;

그렇게 인간의 자연치유 면역체계에 의해 저절로 증세가 회복되길 바라며
병원가라는 구박을 꿋꿋이 견뎌내던 어느날..
 
같이 마트에 갔는데 때마침 '드럭스토아'가 있어서
신랑이 약이라도 사서 먹으라고 해서 '알레르기 비염'약을 사서 먹었답니다..
(전 약도 왜이리 먹기 싫은지요..-_-;)

그걸 먹은 덕분인지..조금씩 호전이 보이더니..
이젠 재채기도..콧물도..목아픔도 사라지고..
후각도 80%정도는 돌아온거 같아요..ㅎㅎ

커피향이 느껴지네요..^^

더불어 생선비린내도..-_-;


+++


하지만..그 바람에 집에서 '룸바'가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아싸;

시간이 없어 매일 청소기를 돌려주지 못하고 있는데
방구석에 자꾸 쌓이는 먼지대책을 세워야해서 로봇청소기를 들여놓은 거지요..

예약해놓으면 매일 같은 시간에 집안을 한시간씩 돌며 먼지를 제 대신 들이 마셔준답니다..;;
다 들이마시곤 다시 충전거치대로 자기자리 찾아 돌아가는 똑똑한? 넘이예요..^^
작년에 신랑이 갖고 싶어하는 걸 너무 비싸다고 못사게 했는데..
이번에 제가 먼저 사자고 했답니다..-_-;
(문명의 이기+인간 게으름의 절정판!)

커텐도 떼어버리고..
털이 자꾸 삐져나와 코를 간지럽히던 오리털이불도 걷어 버렸답니다..
방에 있던 벤자민화분도 늘 강풍이 몰아치는 베란다신세로 전락했어요..-_-;

겨울이 아니라서 옷만들며 먼지가 덜나서 다행인 계절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