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우꺄꺄 2014. 10. 6. 10:01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꽤 오랫동안 했다..


궂이 인터넷상에서 나이를 밝히고 싶지는 않으므로..

몇년동안 일을 했다고 말을 하긴 힘들지만..

암튼..정말 오래했다면 오래했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했고 모든 교과서 귀퉁이는 낙서로 빼곡했지만..

사실 나는 내가 어른이 되어서 만화그리는 직업을 가지게 될줄은 몰랐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그리는 직업을 얻을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으니까..


하지만 아주 우연히 오빠의 친구가 애니메이션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내가 만화를 잘 그린다는 걸 알게 된 그 오빠의 소개로.. 

다짜고짜 애니를 시작하게 되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데.. 

처음의 그 어리벙벙하고 설레이고 벅차오르던 순간이 어제 일처럼 선명한데..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흘렀다니 새삼 믿기지 않는다.. 


그렇게 오랫동안 애니메이션 작화일을 해왔는데..

사실 나는 자신 없는 부분이 있다..


한국 업계에서는 자연물이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에팩트(エフェクト)라고 부르는 부분..


간단히 설명하면..

뭔가가 터지면 불꽃과 함께 연기가 솟구치고..

물이 흐르고..불이 활활 타오르고..번개가 치고 등등..


작품의 성격과 내용에 따라 등장인물 즉 캐릭터가 휘말리거나..

아니면 등장인물이 일으키거나..등등등..


마침 에펙트 좋아하는 사람이 폭파씬 영상을 모아놓은 

 (블로그)가 있어서 참고로 주소 링크..



여튼  이런 효과들인데..

이런것들은 대부분 상상에 의존해야하는 경우가 많고..

불이 타오르고 연기가 솟고 번개가 치는 장면은  

실제의 경우를 참고할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 실사와 애니는 또 달라서.. 

애니메이션적으로 다소 과장된 멋진 느낌을 내며

선으로 표현해서 좋은 타이밍으로 움직이게 해주는것은 또 어려운 일이다..


인물은 별로 잘 그리지 못해도 이런 효과만 잘그리는 

에펙트 전문 애니메이터까지 존재하기도 해서..

'이 장면은 그 애니메이터를 섭외'같은 일들은 업계에선 흔한 일이다 ..


나는 위에 적었던 대로..어느쪽이냐고 한다면 인물은 잘그리지만..

이 에펙트는 내가 생각해도 좀 약한..-_-a


하지만 이런 효과들은 어느정도 공식이 있기 마련이고..

그걸 열심히 파고 들어가서 많은 작품들을 참고하면서 연습을 한다면 

못할것도 없기도 하다..근데 예전엔 잘해보고 싶은 생각도 어느정도 있었지만..

이젠 그게 시간도 부족하고..그쪽에의 열망이 어느정도는 사라져버린 케이스..


한작품에서 작감말고 원화를 할경우에..

콘티가 나오면 일을 나누면서..

나보고 하고 싶은 컷들을 고르라고 말하곤 한다..


근데 나는 그게 귀찮아서 맡기고 싶은 장면을 

알아서 골라서 달라고 하는데 그걸 보면 내가 어떤 쪽을 잘하는지

객관적으로 알게 된다고나 할까..-_-;

 

나에겐 주로 인물쪽..그것도 주인공이 그 작품내에서 특히 멋지거나 

예쁘게 보여야하는 일명 '미세바'(見せ場)라고 하는 씬 위주로 맡기고는 한다..

이런 장면은 예쁘게 그리는 재미는 있지만..

사실 조금 따분한 장면이 많기는 하다..;;



 몇달전..지금 일하는 우리회사말고..

다른 회사의 극장판 일을 받아서 일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나온 씬 하나..



몰래하는 일이기도 하고 아직 제작중이며 개봉하지 않은 작품이기도 해서..

어느 회사의 어느작품인지는 알리고 싶지 않아서 모자이크처리 했지만..


여튼..맑은 해변에 바닷물이 밀려왔다가 밀려나가는 장면인데..

사실 간단하다면 어이없을정도로 무척 간단하기 짝이 없는 씬인데..

웬지 자신이 없었다..-_-a



그래서 결국은 제일 늦게까지 보류하고 있다가..

고심하며 그려서 마지막에 제출한 컷..


근데..이 컷이 의외로 수정없이 OK..


참고 영상이나 컷없이 상상만으로 그려버린 것이라서..

사실 상당히 미심쩍었는데 말이다..-_-a


이렇게 되고보니..폭파씬이나..온갖 에네르기가 진동하는

효과씬들도 한번 연구해볼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다만..

나한텐 그런씬들이 잘 안돌아오기 때문에..ㅋㅋ;;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닌데..-_- 내딴엔 의외의 일이라..

신선해서 기록해 둔다..



나중에 슬럼프로 기운없을때 다시 봐야지..;;



++



초여름쯤인가..여행가서 들렀던 어느 잡화샵의 데크에 장식되어있던 

힘없고 하늘하늘한 꽃들이 예뻐서 찍어왔던 사진..


난 화려하고 튼튼하고 건강해뵈는 꽃들보다는..

이런 소박하고 하늘하늘해서 바람에 이리저리 마구 흔들리는 꽃들이 좋다..



그냥 예쁘고 좋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같이 태풍19호가 직격탄을 날리고 있는 때..

이 녀석들은 얼마나 심하게 흔들리고 있을까..